21.12.08
프랑켄슈타인. 그것은 내가 트위터에서 가장 많이 본 뮤지컬 작품 이름이었다. 과장 좀 보태서 주인공 둘이서 사귄다는 트윗을 오만 번 봤고, A 양은 “둘은 잤어”라고 표현했다. 즉, 그 모 양의 말을 빌려 “오타쿠 심금을 울리는 뮤지컬”이라는 뜻. 그래서 줄곧 궁금해했는데, 마침 기회가 생겨서 보게 됐다.
근데 그간 뮤지컬이라곤 좋아하는 아이돌이 나오는 것만 봐서, 누가 괜찮은지 알 수가 있어야지. 회전문을 돈 경험이 있는 여친의 추천을 받아 캐스트를 골랐다. …는 동빅&은앙이 1순위 추천이었는데, 티켓이 없더라. 아쉬웠지만 카이의 앙리도 나쁘지 않다고 하니 기대를 안고 블퀘 방문.
여친 부탁에 MD라는 것도 사보고, 사실 오타쿠임에도 굿즈엔 딱히 관심이 없는 편이라. 작년 여름의 모차르트 때처럼 문진표를 작성하고, 자리에 앉았다. 티켓팅이고 뭐고, 일요일에 예매하고 수요일에 가는 거라, 3층 2열 6번석. 먼 거야 여친의 오글을 빌려왔으니 됐고, 가장자리라 무대가 안 보이진 않을까 걱정했다. 그러나 우려와 달리 프랑켄은 중앙을 주로 쓰는 극이더라. 캐릭터들이 여기저기서 노래를 부르거나 대화를 나누는 장면도 거의 없어서 오글 편하게 잘 썼다.
서두가 길었네…
처음 본 프랑켄은 재밌고 흥미로운 극이었다. 스토리 등에 아쉬움이 없었느냐 하면 결코 아니지만, 주관적인 별점은 별 다섯 개에 세 개 반. 깎인 한 개는 작품 내적인 문제고, 이건 뒤에 가서 따로 말할 예정. 나머지 반 개는 작품 외적인, 그러니까 전혀 저렴하지 않은 티켓의 가격 때문에. 재관 할인받고, S석인데도 이 가격이면, 라이트하게 여러 번 즐기고 싶은 사람은 부담스러워서 못 하겠다, 싶던. 그러니까 내가 다른 캐스트로도 즐기고 싶은데, 두 번은 지갑이… 😨
아무튼, 극이 시작하고, 빅터가 앙리를 괴물로 만드는 데 성공하는 장면이 나왔다. 나는 그게 엔딩 부분인 줄 알았건만, 1막 엔딩이긴 했으니 반은 맞았던 건가. 여친이 그걸 정말로 축가로 쓰는 거냐고 의아해했던 넘버도 클라이맥스인 줄 알았건만, 이것도 1막 말미에 나오는 노래였다.
예상이 홀라당 빗나가버린 탓인지, 1막 보는 내내 진행 속도가 빠르다고 느꼈다. 특히 앙리가 빅터에게 설득당하는 장면에서. 넘버 한 개 만에 빅터와 협력을 결정하는 앙리는 소위, 금사빠 같이 보이더라. 다만 곱씹어 보니, 모 후기처럼 빅터가 약을 잘 팔았다는 말이 딱 어울렸다. 애초에 앙리는 사체 재활용 논문으로 학계에서 이단아로 찍힌 상황이고, 빅터는 나와 함께 하면 살리는 과학을 세울 수 있다고 부추겼을 뿐. 결국 앙리나 빅터나 생명의 주체라는, 여태까지 금단이라 여겨진 영역에 관심을 두는 동류였다. 초록이 동색.
미쳤다면 하나만 미친 게 아니라 둘 다 미친 거라는 생각을 하는 사이에 전쟁이 끝났고, 등장한 익숙한 이름 워털루(1815). 나폴레옹을 유배 보내기로 했다는 둥 하던 상관이 빅터한테 호통을 치듯 세상이 자네한테 달렸다고 함. 그에 빅터는 명령인지 부탁인지를 묻고, 다른 캐릭터들이 그 두 갤 따라 하는데. 음… 유감이지만, 개인적으로 진지한 극에서 그런 식으로 웃음 포인트를 넣는 걸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딴청 피우는 사이에 장면이 넘어갔다.
이후 씬은 일단은 밝은 느낌의 넘버와 함께 시작. 하지만 빅터가 돌아온다는 것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반응을 보니 폭풍전야더라. 그런 와중에 나타난 빅터는 약혼녀에게 눈길도 안 주더니, 프랑켄슈타인 성에 처박히고. 직후 줄리아의 솔로 넘버였는데, 그 뒤로부터 빅터가 고운 시선으로 안 보임. 엘렌이 앙리에게 빅터 과거를 얘기해줘서 쫌 안쓰러울 뻔했는데, 결국 “이놈 글러 먹었어”로 끝. 그런 나와 다르게, 앙리는 빅터가 마냥 안쓰러웠던 모양이다. 엘렌의 말을 듣고 난 뒤, 빅터를 가리키는 말이 “친구”에서 “친구 그 이상”으로 바뀐 걸 보면.
이 뒤에 나온 게, 내가 프랑켄에서 제이로 좋아하는 장면. 빅터랑 앙리가 함께 부르는 넘버에서 알쓰 같은 앙리가 술 먹고 “으으~~”하면서 인상 쓰는 게 너무 귀엽더라. 😍 카앙 81년생이라면서 그렇게 깜찍한 거 반칙인데, 동그란 안경까지 써서 무해한 느낌 증폭되니 정말… 먼저 취해서 꼬장 부리는 거까지 안 밉게 보이는 걸 보니, 제대로 낚인 듯. 내가.
그리고 둘이 반말 쓰는 게 내 안의 뭔가를 자극했다. 프랑켄 배경이 19세기니까, 의사인 앙리는 평민(부르주아)일 거고, 프랑켄슈타인 성이 있는 빅터는 귀족일 텐데, 말을 편하게 하네? 군대에 있을 때는 빅터가 대위니까 깍듯이 대했는데, 민간인으로 돌아오고 나니 속 트고 말 트고 가깝게 지내는 모습이, 막 다행이고 그랬다. 에로스가 아니어도 좋아, 맛있으니까…
이렇게 행복하게 끝났으면 둘에겐 좋았겠지만, 그럴 리가 없지. 앙리가 돌연 장의사 살인죄로 체포되고, 그 배후는, 다름이 아닌 빅터. 돈에 눈이 멀어 사람을 살해한 장의사를 빅터가 돌로 찍어 죽였는데, 그 죄를 모두 앙리가 뒤집어쓴 것. 근데 빅터 놈은 친구가 죽게 생겼는데도 적극적으로 항변도 안 하고. 엘렌이 앙리의 머리가 원해서 그런 태도인 거냐고 나무라자, 그제야 자백하는. 그 모습에, 앞선 장면에서 빅터가 “전쟁이 끝났으니 신선한 머리를 구할 데가 없다”라고 푸념하더니, 살인 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뉘앙스로 말하던 게 떠올라 섬뜩해졌다.
그런데도 앙리는 빅터가 좋은지, 사형선고를 담담히 받았다. 오히려 빅터가 살아서 연구를 완성해주기를 바라는데, 단두대에 섰을 때 앙리의 눈이 반짝이고 있어서… 한숨만 나오더라. 그래 너도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하는 사람은 아니었지. 빅터보다 사회화가 잘 되어 있었을 뿐.
넘버가 끝난 순간 앙리의 목이 잘렸다. 앙리의 머리는 빅터의 손에 들어갔고, 다른 사람의 몸에 연결되어 다시 태어나는데, 상탈이더라고. 아마, 실험체니까 전신 탈의하고 있어야 할 텐데, 그랬다간 심의에 걸리니 상탈만인 것이다. 그거보다 중요한 건, 카괴 상체 왜 이렇게 탄탄한 것. 동빅의 와이셔츠+검은조끼+검은바지+검은구두 조합이 1부의 내 눈을 사로잡았다면, 2부는 카괴의 단단한 상체가 내 시선을 붙잡고 놔주질 않더라. 😘 이런 게 바로 청순 글래머(?)인가!
다만 내 눈은 즐거웠을지언정, 줄거리는 즐겁지 않았다. 깨어난 괴물은 빅터를 오래 보필해온 집사를 물어뜯어 죽였다. 총으로 위협하니 본능적으로 공격한 것이겠지만, 집사를 말리지 않은 빅터의 경솔함도 살인이 일어난 원인일 것이다. 되살아난 강아지가 어린 줄리아를 공격했던 걸 모르지 않으면서, 어쩜 그리 무방비하게.
안타깝게 집사가 살해당한 뒤, 괴물이 연구실을 탈출하면서 1막이 끝났다. 2막은 살인 격투장에서 고통받던 괴물이 빅터에게 복수하는 내용이 줄기다. 특이한 점은 주연 배우들이 1인2역을 한다는 것. 여친은 이걸 가리켜서 “악몽에는 익숙한 사람들이 많이 나온다고 하잖아”라고 말하더라.
그런 회상에서, 스토리상 어쩔 수 없지만, 서운했던 장면 둘. 까뜨린느가 괴물을 배신하는 것과 괴물이 까뜨린느를 구해주지 않은 것. 솔로 넘버에서 까뜨의 고뇌가 느껴졌고, 그 선택을 이해하지만. 둘이서 함께 탈출하지 못한 건, 희극 좋아하는 오타쿠로서 매우 매우 속상하다.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까뜨는 분명 죄책감을 느꼈는데, 배신당해 눈 뒤집힌 괴물에겐 안 보인 듯…
이게 다 구실 못 하는 남편과 성질 더러운 아내 탓이다! 도엠남캐와 도에스여캐의 침대 사정이 아주 아주 쫌 궁금하긴(?) 하지만, 역시 용서 못 해! 그들이 괴물한테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면, 이후의 모든 사단은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빅터의 해명도 먹혔을 거고. 에휴.
아, 그리고 북부대공 같은 빅터와 끼부림 대단한 쟈크를 같은 사람이 연기한다는 건 “으음… 좀 그렇네”였다. 엘라/에바 같은 경우엔 캐릭의 갭차는 분명히 있지만, 같은 사람이 연기한다는 것에 있어선 그런 느낌이 아니던데. 쥬엘렌이 처절한 모습을 보여준 까닭일까?
길지는 않았지만, 꽤 부담스럽긴 했던 장면이 지나가고. 돌아온 현실에서 빅터는 숙부의 죽음과 누나의 죽음을 동시에 겪었다. 여기서부터 괴물의 행동에 대해 “꼭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의문을 극 끝까지 품었다. 뭐랄까 프랑켄의 줄거리가 권선징악도 아니었기에 더 그 생각을 지우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여친은 그럴 때는 “우리 개무리는 세짤…”하고 이해하라던데. 😂
비참한 가운데 시작된 빅터의 회상. 1막에서는 어린빅터가 나왔는데, 2막에서는 어른빅터가 무릎을 꿇은 채 진행되더라. 안타까움을 부각하려는 연출 같던데, 성공적이었다고 본다. 앞에서부터 우는 사람이 나오기 시작했음… 그렇지만 역시 내 반응은, “그러니까 있을 때 잘하지”. 줄리아는 그 어릴 적부터 빅터만 바라보고 있었고, 엘렌도 부모나 다름없는 사랑을 퍼붓고 있었는데. 룽게라고 달랐을까, 그런데도 빅터가 그걸 무시해온 것이지 않나. 사람이라는 게 으레 그렇다지만. 빅터는 주변 사람들이 눈에 보일 정도로 헌신적인 사람들이라, 좀 더 모나게 보게 됐다.
그리고 줄리아가 죽고, 괴물을 죽이고, 완전히 망가진 빅터는 뭐랄까, “어휴, 저걸 어쩌누.”였다. 여전히 마음 한편에서는 “네가 받아들이지 않아놓고, 이제 와 외로워하는 거냐”라고 빅터를 나무라고 있었지만. 앞뒤에서 훌쩍거리고 있으니 그들이 느낀 안타까움이 나한테 옮겨 묻었을지도. 여친이 나보고 냉혈한이라고 하던데, 과몰입을 자제 못 하면 나만 힘들어지는걸.
게다가 이 작품의 별 한 개를 깎은 원인에 뚱해 있기도 했다. 아니, 뮤지컬이라는 장르의 여캐 취급에 대해 많은 얘기를 들어왔지만, 역시 불만스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엘렌과 줄리아는 빅터 주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죽었는데, 그런 것치고 서사가 빈약하기 그지 없었다. “빅터를 위해 헌신했다”라는 것 외에는 두 캐릭의 서사가 무엇이 있는지. 그런데다 그 헌신이 빅터에게 어떠한 영향을 준 것도 아니고, 죽고 난 뒤 외에. 14년도에 초연이었던 건 알고 있지만, 21년에 4연을 할 정도의 인기극이라면, 주 고객층의 니즈에 맞춰 변화가 있어야 마땅하지 않을까. 흰 드레스를 아름답게 차려입은 줄리아의 비중은 정말 눈물이 날 정도라. 새장 속에 갇혀 서서히 죽어가는 흰 비둘기 같았다. 첫사랑의 아픔이란 게 맛있긴 하지만, 돌아보지 않는 남자는 아무래도 노땡큐.
마지막으로 동빅과 카앙 페어에 한정한 감상. 앙리는 빅터를 사랑하고, 안타까운, 동경하는 친구로 여긴 것 같지만, 빅터는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앙리와 협력하긴 했지만, 결국 빅터에게 앙리는 여차하면 실험체로 쓸 수 있는, 지지자가 아니었을까. 빅터가 순수한 마음으로 앙리를 사랑했다면, 앙리의 머리와 앙리의 몸을 연결해 괴물을 만들었을 것 같다.
5168자 프랑켄 후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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